[더깊은뉴스]‘폭력 어린이집’ 간판 바꾸고 영업

2018-06-25 1



말을 안 듣는다고 때리고, 바닥에 흘린 음식을 강제로 먹이는 어린이집.

이런 학대를 해도 처벌은 솜방망이고, 간판만 바꾼 채 버젓이 영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.

박건영 기자의 '더깊은 뉴스'입니다.

[리포트]
보육 교사가 일곱 살배기의 머리를 내려칩니다.

바닥에 나동그라진 아이는 겁먹은 듯, 재빨리 일어섭니다.

단지 말을 안 들었다는 이유였습니다.

가해자인 조 모 교사는 아동 학대 혐의로, 관리 의무가 있던 원장 고모 씨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.

보육교사에게 학대당한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.

사건 이후 아이는 엄마를 뺀 모든 여성을 기피하고 있습니다.

[A군 / 피해 어린이]
"뚱땡이(보육 교사), 머리, 머리만 때렸어."

[한모 씨 / 피해 어린이 부모]
"여자 선생님 있으면 그 트라우마가 생각이 나나 봐요. 가방도 안 벗고 탁자 밑에 쪼그리고 숨어 있어요.

심리 치료를 받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합니다.

[한모 씨 / 피해 어린이 부모]
"(심리 치료에서) 여자 아이 인형을 발가벗겨요. 벗겨서 진흙으로 얼굴을 묻어요, 조용히 하라고."

아동 심리 전문가에게 A군의 행동을 찍은 영상을 보여줬습니다.

걱정스러운 표정이 가득한 전문가.

[오은영 /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]
"등을 보이는 모습에서 이 아이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나. 극도의 공포, 믿지 못하는 마음 이런 게 자리를 잡고 있다면 엄마 이외의 사람과는 소통하기 어렵습니다."

A군을 이렇게 만든 보육 교사 조 씨는 교사 자격을 일시적으로 정지당했습니다.

[조모 씨 / ○○ 어린이집 전 보육교사]
"제가 죄송하고 잘못했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어요. 아이가 어떤 것도 어머님한테 얘기 들어서 알고 있고요. 죄송합니다. 저 취재하고 싶지 않고요."

폭행이 일어났던 어린이집을 찾았습니다.

외관은 같지만, 다른 이름의 간판이 걸려있습니다.

원장은 바뀌었는데 대표는 이전과 같은 인물. 바로 전 원장 고 모 씨의 남편입니다.

[조모 씨 / ○○ 어린이집 대표]
"임대차 계약 기간에 남아 있지 않습니까? 어쨌든 저의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보증금이 거기 걸려 있으니까 계약을 중간에 해지해버리게 되면 제가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."

조 대표의 부인인 직전 원장은 인근 아동 대상 미술 학원에서 통학차 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.

그런데 이 미술학원의 대표도 남편 조 씨입니다.

[고모 씨 / ○○ 어린이집 전 원장]
"제가 운전(기사를) 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? 저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. 저희 아들 학교 보내야 하잖아요. 저는 하루아침에 직장도 잃고 명예도 잃고 다 잃었어요."

아이가 음식을 흘리자 보육 교사가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립니다.

놀란 아이가 바닥에 뱉은 음식을 교사가 주워서 억지로 먹입니다.

또다른 아이는 뜨거운 죽을 강제로 삼키다, 큰일을 당할 뻔했습니다.

[피해 아동 김모 군 부모]
"애가 입을 안 벌리니까 억지로 입을 벌려서 (죽을) 넣다가 그게 뜨겁잖아요. 애들이 입안이 연하고 약하니까 그게 물집이 잡혔더라고요."

원장 B씨는 아동 3명을 이런 식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.

[피해 아동 김모 군 부모]
"영상을 보기 전에 저희 부부를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갑자기 저희 앞에서 무릎을 꿇어요. 무릎을 꿇고 손을 빌면서 울더라고요."

B 원장은 1심에서 15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.

뒤늦게나마 반성했다는 이유였습니다.

그런데 유죄 판결을 받은 B 원장도 같은 자리에서 이름만 바꾼 채, 새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.

관할 구청이 원장에게 아무런 행정 처분도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.

[B씨 / △△ 어린이집 원장]
"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아요. 지금 업무 방해하시는 거예요. 빨리 가세요."

현행법상 아동 학대가 일어난 어린이집은 운영 정지부터 시설 폐쇄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.

[울산 중구청 관계자]
'(행정 처분을) '할 수 있다' 이렇게 나와 있기 때문에 그건 지자체마다 판단이 좀 다를 거예요. 영유아보육법에 그 사항이(아동 학대로) 판단된다고 해서 바로 자격정지를 준다거나 아니면 자격취소가 된다거나 이러진 않을 거예요."

이런 애매모호한 법 조항 탓에 실제로 행정 조치를 받은 곳은 전체의 17%에 불과했습니다.

처벌도 솜방망이입니다.

아동 학대 혐의로 고발당한 교사 가운데 40%는 기소 유예 등으로 풀려난 반면,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20%에 그쳤습니다.

귀에 걸면 귀걸이,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법규와 솜방망이 처벌이 근절되지 않는 한, 끔찍한 아동 학대는 얼마든 계속 일어날 수 있습니다.

[오은영 /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]
"이런 (아동학대) 경력이 한번이라도 있다면 아이를 지도하고 아이를 가깝게 대하는 일에서 종사하지 않는 게 원칙 아니겠습니까? 훈육이라는 잘못된 제목을 달고 아이를 공격하고 학대하는 건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."

채널 A 뉴스 박건영입니다.

박건영 기자 change@donga.com

연출 이민경
구성 고정화 이소희
그래픽 전유근